다문화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누리칼럼

다문화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  

 

 

    어느 모임에서 광주 광산구 소재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자기 학교 전교학생회장으로 다문화가정 자녀가 선출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학생이 정말 대단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가 초등학교 재학생의 대부분이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실은 많이 놀랐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유네스코와 OECD에서는 한국을 다문화국가로 분류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나그네와 같은 작은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네팔 사람 35명이 69편의 시를 모아서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시집 제목은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입니다. 그들이 노래하는 시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작은 자의 아픔과 상처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품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서로즈 서르버하’의 ‘기계’ 라는 시입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기계가 만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다가/ 저녁에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여기는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고/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 “나도/ 새벽이 언제인지/ 밤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온 지 수년이 지났다/ 이 기계의 도시에서/ 기계와 같이 놀다가/ 어느 사이/ 나도 기계가 되어버렸구나!” 

 

    예수님께서는 주린 자와 목마른 자,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보지 않는 것을 책망하신 것과 같이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는 것도 같은 죄악으로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을 칭찬하셨지만, 나그네를 돌보지 아니하고 무관심한 삶을 주님께 하지 아니한 죄로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그네에 대한 적극적인 ‘환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과 54년 전에는 우리 간호사 선배들도 ‘나그네와 같은 작은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1966~1976년 11년 동안 총 11,057명이 파독간호사로 일하였고, 또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5년 동안 총 7,936명의 광부들이 독일에 파견되어 ‘나그네와 같은 작은 자들’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곧 ‘환대’입니다. 깊은 영성의 가장 큰 특징은 ‘환대’입니다. 다문화 가정 환자분들이 병원에 많아졌습니다.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우리 일터에 주님께서 친히 오시고, 주님을 마주한다면, 환대의 표정과 언어로 대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그네에 대하여 그렇게 환대하기를 원하십니다. 개인과 사회가 다문화 가정을 환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선택적 환대’가 아닌 ‘어울림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일하는 현장 속에서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 줄 것인지 고민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